ESC 쌤의 과학탐험실

[에필로그]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현대문학, 2020년, p.31

by ESC 쌤

 

  안녕하세요, ESC 쌤입니다.

 

삶이라는 책,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족, 친구, 선생님, 학생, 직장 동료, 이웃 주민, 가게 직원, 은행원, 택배 기사, 차량 운전자 등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얽히며 살아갑니다. 그 모든 사람은 다른 기질, 경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100% 동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조차도 같은 인생을 살지는 않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한 구절을 필사하면서 ‘접힌 페이지’와 ‘접힌 말들’이라는 표현이 유독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책이라는 매체만큼 삶을 잘 드러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의미라도 표현하는 단어가 다르고, 단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문장이 다르며, 문장들이 쌓여 각기 다른 이야기를 형성합니다. 작가의 삶이 묻어나는 책 한 권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많은 삶을 담고 있죠.

  그 문장을 읽으며, 책 한 페이지가 접히고, 그 안의 문장들이 접히면서 삶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접힌 말들은 내가 직접 겪은 삶의 단면일 수도 있고, 아직 읽지 못한 삶의 단면일 수도 있겠지요.

 

 

쓰여진 페이지와 아직 남아 있는 백지들

  30대 중반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 이미 많은 페이지를 채워왔습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삶이 담겨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부터 스쳐 지나간 인연들까지—가까운 삶은 선명하게, 멀어진 삶은 희미하게 기록되어 있지요.

  잠시 과거의 페이지를 되돌려 읽어봅니다. 수정하고 다시 쓸 순 없지만, 읽을 수는 있으니까요.

  지금의 페이지와 비교해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다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인 ‘나’가 대처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삶 속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겠지요.

  그렇게 쌓여온 기록들. 겨우 30대 중반까지의 이야기인데도, 이미 상당한 분량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쓰여지지 않은 백지들이 채워지면, 얼마나 두꺼워질까요?

 


함께 써 내려가야 할 이야기들

  제가 아끼는 책을 한 번 살펴봅니다. 많이 사랑해서 함께 살고 있는 책도 있고, 아직 몇 페이지 쓰이지 않은 책도 있습니다. 그 중 함께 살고 있는 책은 비슷한 두께이지만, 아직 읽지 못한 페이지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함께 읽고 쓰는 시간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쓰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책들을 보면 아직 쓰여진 페이지가 많지 않음에도 매일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제가 알지 못하는 페이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결혼하기 전에 늘 곁에 있었던 책들을 바라봅니다. 그 책들은 두께가 어마어마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먼지가 켜켜이 쌓이고 색이 바래 읽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 책들의 작가들도 오래되서 그럴까요? 이전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잊어버리신 것이 많기도 하지만, 분량이 많아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르는 페이지들이 있겠지요.

  이전에는 함께 페이지를 쓰고, 함께 읽었는데, 제가 결혼하고 나서 곁에 두지 못해 읽지 못하다보니 이제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화려하고 크고 멋져 보였던 표지가, 이제는 낡고 빛바랜 느낌이 듭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아프게 다가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이제 3월이 다가옵니다. 학교들은 개학을 앞두고, 업무 분장과 신학기 연수,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합니다.
바쁜 시기일수록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갈 시간이 줄어들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때때로는 책의 페이지를 읽어야 합니다.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모르는 페이지들은 책의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야 합니다. 혹은 요약해서라도 알려달라고 해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소중한 책이라도 내용을 알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가장 소중한 책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야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좀 더 많은 페이지를 함께 읽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러니, 시간이 스러져 가기 전에 사랑하는 책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겠습니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아쉬운 일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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