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by ESC 쌤
안녕하세요, ESC 쌤입니다.
얼마 전, 중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느덧 그 아이들이 저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더군요.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고민이 생겼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한번 보시겠어요?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된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
어설펐던 신규 교사 시절의 담임을 기억하며 찾아와 준 아이들을 보면,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고 동기 부여가 되곤 합니다. 이번에 만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대화 중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선생님, 나이를 먹어도 뭔가 어른이 되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냥 더 성숙해지기보다는 나이만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너희를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사실 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여전히 어른이 된 것 같지 않거든. 몸만 나이 들었지, 그냥 어른인 척하는 법만 늘었을 뿐이야.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잘하는 '척'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거지."
그러자 이 녀석들이 웃었습니다.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 그리고 옳고 그름의 경계
이 친구들은 1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곤 합니다. 덕분에 지난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연애, 협력과 갈등 등 흔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들이죠. 이번에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팀 과제를 해야 하는데, 팀원 중 한 명이 과제 준비일만 되면 꼭 아프다고 빠져요. 서류를 제출하기는 하는데, 사실 아픈 게 아니거든요. 금요일 강의라 금, 토, 일 이어서 놀러 가는 게 뻔히 보여요. 너무 화가 나요. 이런 걸 막을 수 있도록 제도를 폐지하거나 더 강화된 증빙 서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사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습니다. 중요한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면 유독 결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죠. 물론 미리 본 학생과 나중에 본 학생 간의 유불리를 막기 위해 보안 유지와 다른 평가 문항을 제공하지만, 정보 차이와 준비 시간의 차이로 유리한 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아 그거 진짜 좀 별로이긴 해! 팀 과제 하는데 그러면 진짜 하는 사람만 하는데 열받는게 맞지. 나도 너희만할 때, 아니…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희랑 같은 생각을 했어. 난 좀 더 과격했지. 그런 학생들에게 대놓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거든. 위험한 행동이었지. 그 때 이야기를 들은 학생이 나한테 본인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 말이 틀리지는 않거든. 다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말했어. 그게 맞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은 내 말이 정말 옳은 걸까 고민이 들어.내가 담임을 10년 넘게 해보니까 정말 아파서 결석하는 경우도 있거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든 학생도 있어. 반대로, 조금만 배나 머리가 아파도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는 학생이 있고. 문제는 실제로 며칠 입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
사람마다 아픔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다르더라고. 어떤 사람은 참을 수 있는 통증이, 어떤 사람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지. 무언가 모르는 히스토리가 있어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심각할 수도 있고.그러면 나는 내 기준을 가지고 그들을 판단해도 되는 걸까?"
이번에는 다들 웃지 않았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더군요. 사실, 저도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학교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일어난 사회적 이슈로 인해 '수차례 이루어진 담임 교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러다 이 친구들이 자신들의 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초등학교 때 1년 동안 담임 선생님이 세 번이나 바뀌었어요. 갑자기 그만두시거나 육아 휴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반 분위기가 되게 어수선했던 기억이 나요.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어요."
20대 중반의 혈기 왕성하고 철 없던 시절 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임용 시험을 합격하고, 비슷한 또래부터 부모님 뻘의 선배 교사까지 다양한 삶의 무리 속에서 서투르고 경험이 적은 나이 어린 신규 교사의 시절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연이어 육아 휴직해 이름만 알고 얼굴은 모르는 사람, 종업식과 졸업식이 끝난 직후에 복직하고 새 학년도가 시작하기 전에 다시 휴직하는 사람, 매번 마감 기간에 다다르고 업무를 시작하다가 미비한 점이 생기는 사람, 한정된 기회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평가를 절하하며 여론을 만드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저 사람은 왜 그러는거지? 이건 잘못되었어, 난 그러지 않을테야.'라는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참 섣부르고 어린 날 것의 생각이었죠. 사정을 알면 그렇게 판단할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 중 하나의 이야기를 해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할게. 하지만 선생님도 여러 학교에서 충격적인 사례들을 많이 봤어.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했던 건 1월 초에 복직하고 2월 말에 다시 휴직하는 선생님이었어."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의 표정에 물음표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덧붙였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12월 말~1월 초면 방학이잖아? 생활기록부도 다 작성됐고, 사실상 1년 과정이 끝난 시점이지. 그런데 이때 복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수업은 없고, 이미 기간제 선생님이 생활기록부를 다 정리했을 테니까 업무 부담도 적어. 그런데 월급은 그대로 받고, 설날 보너스도 받지.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휴직을 신청하면, 그걸로 끝이야."
이 말을 듣고 한 녀석이 당황한 듯 물었습니다.
"아니, 그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내내 고생한 선생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런 걸 막을 방법은 없어요?"
제가 답했습니다.
"육아휴직은 기본적인 권리야. 관리자 선생님들도 막기 어려워. 게다가 저출산 시대에 또 육아휴직 권리를 비판하는 건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했지. 현실적으로 기간제 선생님은 그렇게 되면 대책 없이 자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야."
이야기를 이어가며 덧붙였습니다. (실업급여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는데 관련 정보는 '더보기'를 눌러 참고하세요.)
[구직 급여(실업 급여) 지급 기준]
- 가입 기간에 따라 120~270일 지급
- 지급일수는 고용보험 가입기간과 연령에 따라 달라지며, 최소 120일 ~ 최대 270일입니다. 고용보험 가입기간은 회사를 옮기더라도 계속 누적되어 늘어나지만, 구직급여를 받았다면 그 이전 기간은 제외됩니다.
◼ 가입 기간 및 연령(이직일 당시)에 따른 지급일수
(1년 미만) 50세 미만 120일, 50세 이상 및 장애인 120일 지급
(1년이상~3년미만) 50세 미만 150일, 50세 이상 및 장애인 180일 지급
- 출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고용24'
"솔직히, 나도 처음엔 이걸 보고 너무 나쁘다고 생각해. 비판도 아니고 비난 수준의 입장 쪽이랄까? 나라에서 주는 실업급여는 1년을 채우지 못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지거든. 선생님들이 받는 정근수당이나 명절수당이라는 것도 못받으니 차이가 크지.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여지가 생긴 부분이 있어. 직접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알겠더라고.
옹호하는 건 아니야. 다만, 아이를 전담해서 돌봐야만 하는 부득이한 가정 상황에서 돈이 부족하면, 선생님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 수 있다는거야. 젊었을 때에는 이런 걸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데 직접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말 내 아이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켜켜히 쌓이더라고.
선생님이 여러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알게 된 건데, 100개의 가정이 있으면 100가지의 사정이 있더라.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어려운 상황도 많았어. 그런 상황을 모른 채, 내 기준만을 들이대며 비난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물론, 일반화하자는 건 아니야. 다 변명이라고 생각하긴 해. 하지만 이런 사례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 판단이 항상 절대적으로 옳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고."
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경우도 있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거든? 최장 n일까지 쓸 수 있는데, 시작 시점을 잘못 잡으면 날짜 소모가 되어서 부득이하게 방학 중에 복직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더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상황이 생기는 거지.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이 일부러 복직과 휴직을 반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경우일 수도 있는 거야."
아이들은 이해와 납득 불가의 감정을 붓으로 문질러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솔직하게 말했죠.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예전에는 이런 거 다 나쁜 거고 틀린 거라고만 생각했어. 분명하게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니까 목소리도 내고 그랬는데 갈수록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선이 옅어진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분명해진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내 기준이 무조건 옳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돼. 누군가는 나이를 먹을수록 신념이 확고해진다고 하지만, 그게 고집과 아집이 되기도 하잖아. 나도 그 애매한 경계에서 고민하는 것 같아.
사실 무조건 틀리다고 덮어놓고 비난하면 마음이 편하긴 해. 틀리다고 생각을 안하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그게 맞는 건지, 찝찝한 기분이 남더라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구절에 대한 단상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사람의 판단에 대한 구절이 나옵니다.
"누구든 무슨 상관인가?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조차 묻지 않게 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란 구분도 잘 맞질 않는다. 그저 모든 사람이 불쌍할 뿐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기별로 상황별로 다르고 그 정도가 다를 뿐이죠. 매 순간 고민과 성찰을 통해 성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좋은 사람일까요? 불쌍한 사람일까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노력해야죠.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같이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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